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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P 온라인/ASAP 소개

ASAP가 '실전적'이 아닌 '현실적' 호신술인 이유

 

 

어제 여성호신술 회원 한 분이 보낸 문자입니다. 과거 크고 작은 성폭력 피해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해 진 이후로는 아예 집 밖으로도 안 나가고 대중교통 이용도 잘 안 한다는 분으로, 이전에 여러가지 상담도 많이 받았고 다른 호신술을 1년 정도 배웠던 적도 있지만 극복하기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던 차에 TV에 소개된 ASAP를 알게 됐고, 현재까지 초급과정 수업을 8회 받았습니다. (2회 남음)

 

이외에도 혼자 밤길을 걷는데 호신술 특강 때 배웠던 내용을 기억하고 따라했더니 무섭지 않았다는 등 연락을 해오는 분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을 얘기해주십니다. (실제 치한을 만나거나 위기상황에서 벗어난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그 비율은 거의 1/10 수준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그게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별로 대단한 상황도 아니구만.'이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자신에게 저런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놀라워하고 기뻐합니다.

 

이는 실제로 상당수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가 특정하고 구체적인 성폭력 피해 경험보다는 대부분 저런 일상에서의 사소하지만 막연한 위협이나 불안 상황에서 '(현재의 자신에게 닥친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는 데서부터 비롯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존 여성호신술 프로그램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오류이기도 하지요.)

 

거기다 세간에 팽배해있는 '여자가 남자와 싸워 이길 수 있겠냐'든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성폭력 가해자에게 괜히 저항하다가 더 크게 당하기 십상'이니,  '차라리 목숨이나 부지하는 게 낫다'는 식의 과장되고 비관적인 강간 신화의 세례까지 더해지고 나면, 여성들의 폭력 상황과 가해자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더 커지게 됩니다.

 

이렇게 위험 상황에 공포와 더불어 자기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이나 불안이 더욱 깊어지면, 결국 저항 의지를 잃고 그저 '(운 좋게)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상태에 이르고 마는 것이죠. (성폭력 뿐 아니라, 많은 형태의 폭력 피해자들이 저항 의지가 꺾이기까지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됩니다.)

 


때문에 이런 트라우마나 막연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대(가해자)를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해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자신에게 대입할 수 있도록 익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많은 여성주의자들이나 단체들이 하는 여러가지 연구와 규범/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운동들은 보다 사회적이고 근본적으로 이런 해법을 만들고 정착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요.

 

문제는 개개인이 당면한 상황으로 돌아왔을 때 생깁니다. 여전히 현재의 신체적/심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거나 제대로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당장 피부로 직접 겪고 느끼는 폭력적 현실 앞에서는 다시금 좌절하기 쉽다는 것이죠. 아마도 국내 여러 여성단체들이 자기방어 훈련에 소극적이거나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ASAP를 통해서 무슨 특별한 비법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참여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두려워하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 상황과 가해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고, 합리적이며 실현 가능한 대응법을 제시하고 체험시켜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짧은 시간에 최소한의 기술만을 배워서도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성공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ASAP가 '실전적'이 아닌 '현실적인' 호신술 프로그램인 이유이기도 합니다.